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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거인 해왕성을 지나, 우리의 탐사선은 이제 태양계의 가장 춥고 어두운 변방으로 나아갑니다. 이곳에는 발견된 순간부터 76년간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이자 막내로 사랑받았던, 그러나 2006년 한순간에 그 지위를 박탈당한 비운의 천체, 명왕성(Pluto)이 있습니다.
"My Very Excellent Mother Just Served Us Nine Pizzas." (나의 매우 훌륭하신 어머니께서 우리에게 아홉 개의 피자를 막 내어주셨다)
과거 태양계 행성의 순서를 외우기 위해 사용했던 이 문장의 마지막 'Pizza'가 바로 명왕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Pizza' 없이 문장을 외웁니다. 왜 명왕성은 행성의 지위를 잃어버렸을까요? 단순한 '퇴출'일까요, 아니면 더 정확한 '재분류'일까요?
오늘은 이 '행성 X'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의 전말을 파헤치고, 인류의 탐사선 '뉴호라이즌스(New Horizons)'호가 9년 반의 긴 여행 끝에 마주한 명왕성의 상상 초월의 진짜 모습을 탐사해 보겠습니다.
1부: 뜨거웠던 논쟁 - 행성의 자격이란 무엇인가?
명왕성의 운명을 바꾼 사건은 2000년대 초, 명왕성 너머에서 명왕성과 크기가 비슷하거나 더 큰 천체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특히 2005년 발견된 '에리스(Eris)'는 명왕성보다 질량이 더 큰 것으로 확인되면서 천문학계를 큰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 천문학자들의 딜레마:
- 선택 1: 에리스와 앞으로 발견될 비슷한 천체들을 모두 10번째, 11번째 행성으로 인정할 것인가? (이렇게 되면 행성의 수는 수십 개로 늘어날 수 있다.)
- 선택 2: '행성'의 정의를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재정립하여, 명왕성을 포함한 이 새로운 천체들을 다른 그룹으로 분류할 것인가?
결국 국제천문연맹(IAU)은 2006년 역사적인 총회에서 두 번째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행성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공식적으로 정의했습니다.
- 태양 주위를 공전해야 한다. (명왕성 통과 O)
- 스스로의 중력으로 공처럼 둥근 모양을 유지해야 한다. (명왕성 통과 O)
- 자신의 궤도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즉, 궤도 주변의 다른 천체들을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명왕성 통과 X)
2부: 결정적 이유 - '궤도 청소' 실패의 의미
명왕성이 행성의 자격을 잃은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3번 조건, '궤도 청소'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지배하지 못하는 궤도: 지구를 포함한 8개의 행성은 자신의 공전 궤도에서 압도적인 질량을 가진 '주인'입니다. 주변의 다른 작은 천체들은 행성에 흡수되거나, 튕겨 나가거나, 혹은 위성이 되어 종속됩니다.
- 카이퍼 벨트의 일원: 하지만 명왕성은 다릅니다. 명왕성은 해왕성 궤도 너머의, 수많은 얼음 천체들이 도넛 모양으로 분포하는 '카이퍼 벨트(Kuiper Belt)' 영역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명왕성은 이 카이퍼 벨트의 수많은 천체들 중 가장 큰 편에 속하는 '일원'일 뿐, 그 궤도를 지배하는 '주인'이 아닙니다. 자신의 궤도에 있는 모든 천체의 질량을 합쳤을 때, 명왕성의 질량은 고작 0.07%에 불과합니다. (지구의 경우 이 비율은 170만 배에 달합니다.)
결국 명왕성은 행성에서 '퇴출'된 것이 아니라, '왜소행성(Dwarf Planet)'이라는 새로운 분류의 기준이 되는, 그 첫 번째 멤버로 '재분류'된 것입니다.
3부: 9년의 기다림, 뉴호라이즌스가 마주한 진짜 명왕성
명왕성이 왜소행성으로 재분류되기 7개월 전, NASA는 명왕성을 향한 인류 최초의 탐사선 '뉴호라이즌스'호를 발사했습니다. 그리고 2015년 7월 14일, 9년 반 동안 50억 km를 날아간 탐사선은 드디어 명왕성의 민낯을 인류에게 전송했습니다. 그 모습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 거대한 하트, 톰보 영역 (Tombaugh Regio):
명왕성의 가장 상징적인 모습은 바로 표면에 그려진 거대한 하트 모양의 지형입니다. '톰보 영역'이라 불리는 이곳은 질소 얼음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빙하 평원으로, 놀랍게도 충돌구(크레이터)가 거의 없습니다. 이는 이 지역의 지표면이 형성된 지 1억 년도 채 되지 않은, 지질학적으로 매우 '젊은' 땅임을 의미합니다. - 살아있는 행성?: 죽은 얼음 덩어리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명왕성은 지금도 지질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살아있는 세계'였습니다.
- 얼음 화산(Cryovolcano): 물과 암모니아 등을 분출하는 거대한 얼음 화산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 수천 미터 높이의 얼음 산맥: 물 얼음이 기반암처럼 작용하여 에베레스트산 높이에 육박하는 거대한 산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 질소 빙하의 흐름: 톰보 영역의 질소 빙하는 지구의 빙하처럼 천천히 흘러내리며 주변 지형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 푸른 하늘과 붉은 눈: 명왕성은 지구처럼 질소와 메탄으로 이루어진 옅은 대기를 가지고 있으며, 이 대기 때문에 푸른빛의 연무(Haze)가 관측되었습니다. 또한 극지방에는 태양 자외선에 의해 생성된 유기물 '톨린(Tholin)'이 붉은 눈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결론: 이름이 아닌, 존재 자체의 가치
뉴호라이즌스호의 탐사 결과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명왕성이 행성이든 왜소행성이든, 그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태양계 가장 깊은 어둠 속에,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복잡하고 아름다우며,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명왕성은 행성 지위 박탈이라는 '눈물의 드라마'를 통해 오히려 전 세계인의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명왕성과 카이퍼 벨트를 지나, 인류가 보낸 가장 위대한 여행자, 보이저 호의 발자취를 따라 태양계의 진정한 끝을 향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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