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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 탐사 가이드 #9] 태양계 끝을 찾아서, 보이저 1, 2호의 위대한 여정

 

우리는 이제까지 태양계의 행성들을 차례로 탐사했습니다. 하지만 태양계의 '끝'은 어디일까요? 마지막 행성 해왕성? 아니면 왜소행성 명왕성? 그 경계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멀리, 가장 오랫동안 여행하고 있는 위대한 탐험가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바로 보이저(Voyager) 1, 2호입니다.

1977년, 4년에 한 번 오는 외행성들의 특별한 정렬(그랜드 투어) 기회를 이용해 발사된 이 쌍둥이 탐사선은, 원래 목성과 토성 탐사라는 5년의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하지만 45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 노익장 탐험가들은 여전히 작동하며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태양계의 가장자리, 그리고 그 너머 성간우주(Interstellar Space)의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오디세이, 보이저 호의 여정을 따라가며 그들이 발견한 태양계의 진정한 경계와, 외계 지성체에게 보내는 인류의 '유리병 편지'에 담긴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1부: 그랜드 투어 - 우주적 행운을 이용한 여정

보이저 호의 신화는 176년에 한 번 찾아오는 '행성 정렬'이라는 우주적 행운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이 일렬에 가깝게 정렬되는 이 시기를 이용하면, 한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다음 행성으로 날아가는 '중력 도움 항법(Gravity Assist)'을 연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 새총 효과: 이 항법은 행성의 중력을 마치 '우주적 새총'처럼 이용하여 탐사선의 속도를 급격히 높여주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이 없었다면 보이저 호가 해왕성까지 가는 데 30년 이상 걸렸을 것입니다.
  • 엇갈린 운명: 보이저 2호는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으로 이어지는 원래의 그랜드 투어 경로를 따라갔고, 보이저 1호는 토성의 위성 타이탄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경로를 변경하여 천왕성과 해왕성을 지나치지 않는 대신, 더 빠른 속도로 태양계 바깥쪽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이 결정으로 보이저 1호는 현재 인류가 만든 물체 중 가장 멀리 나가있는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2부: 인류의 메시지 - 외계 지성체에게 보내는 '골든 레코드'

보이저 호의 임무에는 단순한 과학 탐사를 넘어선, 인류의 꿈과 철학이 담겨 있었습니다. 바로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입니다.

  • 우주를 떠다니는 타임캡슐: 금으로 코팅된 이 12인치 구리 디스크에는, 언젠가 이 탐사선을 발견할지 모를 외계 지성체에게 보내는 인류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이 프로젝트를 주도했습니다.
  • 무엇이 담겨있나?:
    • 음악: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와 같은 서양 고전 음악부터, 세계 각국의 민속 음악, 척 베리의 'Johnny B. Goode'와 같은 로큰롤까지 인류의 다양한 음악이 담겨 있습니다.
    • 소리: 파도 소리, 바람 소리, 동물의 울음소리, 아기의 첫 울음, 어머니의 키스 소리, 다양한 언어로 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 등 지구의 소리들이 녹음되어 있습니다. (한국어 인사말 "안녕하세요"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이미지: 115장의 이미지에는 인간의 DNA 구조, 해부도, 수학 공식부터, 만리장성, 타지마할 같은 건축물, 올림픽 선수의 모습, 식사하는 가족의 모습 등 인류의 삶과 문명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 레코드는 수십억 년이 지나도 변치 않을 것이며, 인류가 멸망한 후에도 우주 어딘가에서 '우리는 한때 이곳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마지막 유산이 될지도 모릅니다.

3부: 태양계의 경계를 넘다 - 창백한 푸른 점과 성간우주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보이저 1호는 1990년, 해왕성 궤도를 막 지났을 때 칼 세이건의 간곡한 요청으로 카메라를 돌려 자신이 떠나온 길을 촬영합니다. 60억 km 밖에서 촬영한 이 사진 속에서, 지구는 광활한 우주의 햇살 속에 떠 있는 아주 작은 먼지 한 톨에 불과했습니다. 이 사진이 바로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입니다.

칼 세이건은 이 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자부심, 우리가 아는 모든 역사, 모든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그 모든 것이 저기, 햇살 속에 떠 있는 먼지 한 톨 위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보이저 호는 태양계의 진정한 경계에 도달했습니다.

  • 헬리오스피어(태양권): 태양풍이 미치는 거대한 자기장 거품 영역입니다.
  • 헬리오포즈(태양권계면): 태양풍의 힘이 성간 물질과 만나 멈추는, 태양권의 가장 바깥 경계입니다.
  • 성간우주 진입: 2012년 8월, 보이저 1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헬리오포즈를 넘어 별과 별 사이의 공간, 즉 성간우주로 진입했습니다. 보이저 2호 역시 2018년 11월에 뒤를 이어 성간우주로 나아갔습니다.

결론: 영원을 향한 고독한 항해

현재 보이저 1호는 지구에서 약 240억 km(빛의 속도로 22시간) 이상 떨어진 곳에서 초속 17km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탐사선에 탑재된 원자력 전지는 2025년경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며, 그때가 되면 우리는 이 위대한 탐험가와 영원히 작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여행은 끝나지 않습니다. 전력이 끊긴 후에도 보이저 호는 관성에 따라 수만, 수십만 년 동안 우리은하를 계속해서 항해할 것입니다. 인류의 꿈과 희망, 그리고 존재의 증거를 싣고서 말이죠.

보이저 호는 단순한 기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주를 향한 인류의 호기심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영원을 향해 날아가는 우리의 '대사(Ambassador)'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위대한 여정의 끝에서, 우리 태양계의 가장 바깥 영역에 숨겨진 마지막 세계를 탐사하며 대장정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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